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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50에 의사 그만 둔 사연 (출처: 의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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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58회 작성일 24-06-2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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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폭압적인 상황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내게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은 부모님도 잘 모른다. 어려서 우리집은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다. 나를 포함해서 3대가 한 울타리에서 살았고 삼촌 고모들까지 언제나 시끌벅적했다. 그런데 집안에 문제아가 있어서 걸핏하면 폭력적인 상황이 연출되었다.


4살, 5살 경부터 시작된 폭력상황은 이후 몇 년 동안 간헐적으로 지속되었다. 거의 언제나 잠결에 천둥소리처럼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떠보면 바로 내 눈앞에서 한번도 보지 못한 광경들이 펼쳐지곤 했다. 돈이 떨어지면 집안에 기어들어와 돈을 내놓으라며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상상할 수 없는 온갖 협박질이 다 동원되었고 집안에 방문이며 집기가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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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내가 직접 폭행을 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피할 곳이 없어서 잠자리에서 일어나 내 눈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고스란히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의 상처는 내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나는 지금도 할아버지 목을 겨누던 시퍼런 부엌칼과 희번득거리던 눈빛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성장하면서 나는 오랫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밤에 깊이 잠들지도 못했다. 잠결에 행여 바스락 소리라도 들리면 소스라치게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나이 50쯤이 되어서야 그 악몽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어릴 때의 이 경험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유독 강압적인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특히 누군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강압적으로 내게 뭔가를 시키려고 할 때엔 생각할 것도 없이 거의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나는 내 또래 친구들과는 싸움 한번 해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유독 학교 담임선생님과는 가끔 아주 심하게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대립했다. 초등학교때 담임과도 그랬고 고교 때 담임과도 그랬다. 심지어 좀 살벌한 시기였던 신군부 시절인 81년 대학생 입영훈련 들어가서도 부대 중대장의 명령을 공개적으로 거부했었다. 


아마도 어렸을 적 그 상황이 소환되어 그렇게 반응했던 것 같다. 누군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내 의사에 관계없이, 또는 분명히 거부의사를 밝혔음에도 무시하고 강압적으로 명령을 이행하라고 윽박지르면 바로 거부하고 저항했다. 머리 속으로 계산하고 나오는 행동이 아니라 거의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딱히 불의에 항거하는 종류의 것은 아니라서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의사가 되고 나서 내가 가장 힘들었던 점이 바로 정부가 내게 무조건 건강보험 진료를 하도록 강제한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렇게 나의 선택권을 박탈하고 강제하면서도 수가도 정부 입맛대로 정하고 심사라는 걸 내세워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명확한 기준도 없이 삭감해대며 그걸 환자에게 '부당진료'라고 통보했다. 나는 그 과정 전체가 무지막지한 폭력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남들이 저수가 이야기를 할 때도 나는 건강보험을 거부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나는 진료실에서 행복하지 않았다. 


언젠가 한참 진료를 보고 있는데 보험공단에서 병원으로 전화가 왔었다. 피보험자인 내게 부양가족으로 올라와 있는 나의 아들이 병원 진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부당진료로 환수를 했고 환급금이 발생했으니 피보험자인 내가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 아들을 상대로 부당진료를 했다는 의사가 바로 나였다. 아들이 가벼운 감기로 내게 진료를 받았었다.


내가 해당 의사인줄 모르고 실수로 전화한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알고서도 내게 전화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어떻게 내게 대놓고 "당신이 부당진료한 것을 공단에서 환수했으니 피보험자로서 다시 찾아가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할 수 있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더구나 그동안 자기들 입맛대로 삭감했던 것들을 내 환자들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부당진료' 운운하면서 전화해 댔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정나미가 떨어졌다. 


나는 십여년을 교육받고 훈련받아 의사가 되었고, 환자는 내가 보았는데 환자 코배기도 안 본 '의사도 아닌 공단직원'이 내 진료내역과 처방만 보고 "아, 이건 부당진료네요!"라고 하는 것도 어이없는 일인데, 그걸 또 환자들에게 '의사가 부당한 진료를 해서 우리가 돈을 환수했다'고 자랑스럽게(정말 자랑스러워 한다) 통보한다니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난 30년동안 정부가 전국민을 상대로 의사들이 부당한 진료를 했다고 날려대었으니 의사들에 대한 이미지가 좋을 턱이 없다.


심지어 의약분업이 되고 나서는 약국에서 나간 약값을 의사 진료비에서 삭감하고 있다. 의사가 잘못된 처방의 원인 제공자라는 것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여기서 '잘못된'의 기준은 그들(건보공단, 심평원)의 기준이다. 의료법상 전혀 문제가 될 것들이 아니다. 의사가 정말로 의료법에 위반되는 엉터리 처방을 했다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의료법에 아무 문제가 없는 처방도 잘못된 처방이라고 약값을 의사 진료비에서 떼어서 환자에게 돌려준다. 심지어 환자가 원하지 않아도 의사가 부당한 짓을 했는데 적발했다며 자랑스럽게 돌려준다. 


족부 통증으로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오랫동안 약을 먹던 환자가 있었다. 매번 똑 같은 약을 서울까지 올라가 타먹는 것이 불편해서 처방전을 들고 동네 신경과 의원에서 그대로 처방받아 복용했다. 문제는 그 처방에 동네의원에서는 잘 쓰지 않는 고가 신약이 있었다는 것. 몇 개월 후 공단에서 의사가 부당진료를 해서 환수했다는 통보가 날라갔고 '부당'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환자는 그 길로 달려가 의사 멱살을, 실제로 멱살을 잡았다. 


그들은 환자가 결과에 만족하고 이의가 없다고 말해도 소용없다. 환자는 무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소비자인 환자는 전혀 상식이 없는 무지한 사람들이고 공급자인 의사는 전혀 선량하지 않은 그저 틈만 보이면 돈만 밝히는 돈벌레 취급을 한다. 원래 의료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이다. 공적보험이든 사적보험이든 보험자(보험회사)는 보조적 관계이다. 굴러온 돌이 아주 상전행세를 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리고 진료비를 얼마나 받아야 할지는 의사가 제일 잘 안다. 같은 수술이라도 수술 시야에 미세 기형이 있어서 아주 난이도가 높은 수술이 된 경우도 있고, 수술 중에 생각하지도 못한 것 때문에 조심조심, 아주 애간장을 태우며 수술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영미권의 의료보험과 관련된 문헌을 보면 '진료비 협의'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민간 보험 위주의 미국 뿐만 아니라 국가가 공적시스템을 가동하는 호주 쪽 문헌에서도 '진료 후 진료비는 의사가 책정하고 보험회사(보험당국)이 의사와 진료비를 협의한다'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알다시피 이미 수가를 원가의 50~70%선에 후려쳐서 정부가 책정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환자가 충분히 만족했고 결과가 좋아도 환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 그건 환자분이 잘 모르셔서 그러는 거고요. 전문가인 우리가 치료 내역을 꼼꼼히 봤는데 이 부분 이것은 의사가 돈을 밝혀서 하지 않아도 될 것을 한 거 에요. 그래서 우리가 알아서 환수했어요. 참 잘했지요?" 이런 식으로 현장은 돌아간다. 대한민국의 의료현장은 그 자체가 코미디다. 


언젠가 의사들 연수교육에 보험공단 관계자가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강연이 끝나고 어느 의사가 물었다. "가끔 환자들이 수액을 놔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청구하면 모조리 삭감이니 비급여로 받고 수액을 놔주어야 하나, 아니면 거부해야 하는가?" 공단 관계자 왈 "환자가 원하면 진료 거부하지 말고 놔주세요. 그리고 청구하세요." "청구하면 보험지급 해주나요?" "100% 삭감합니다. 진료 거부하지 말고 해주고 청구하고 삭감 받으세요!" 이게 말인가 소인가? 심리학적으로 이런 것을 '이중구속'이라고 한다. 정신분열적 행동양태다. 나는 지금도 그때 그 말을 하던 그 관계자의 당당했던 얼굴표정이 생각난다. 난 그때 이 땅에서 의사로 사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젊었을 때는 가끔 길거리에서 경찰이 지나가는 사람들 가방을 수색하곤 했다. 인권의식이 별로 없던 시절이야기다. 학생 데모가 한창일 때엔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학생들 아무나 불러 세워 가방을 수색하기도 했다. 만약 요즘 그런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이제는 구체적인 정황근거 없이 범죄행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만으로 누군가의 소지품을 뒤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누군가의 범죄행위가 의심된다고 수사기관 마음대로 집을 수색하고 회사를 수색할 수도 없다. 범죄사실을 강력하게 의심할 만한 근거가 어느 정도 소명이 되어야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해주고 그 영장을 토대로 압수수색을 한다.


더구나 압수수색을 할 때엔 집안의 모든 것을 이 잡듯 뒤지는 것이 아니라 영장에 적시된 것만 수색한다. 그런데 병원에 실사가 나오는 것은 조사대상도 조사범위도 공단과 복지부가 정한다. 실사를 받은 동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개 2,3년치 진료기록 전체를 제출하라고 요구한다고 했다. 그리고 일일이 환자들에게 실제 진료를 받았는지 확인한다고 했다. 만약 환자가 "내가 그 병원에 그렇게 많이 갔나? 그 중에 서너 번은 안 갔던 것 같은데"라는 말이 나오면 이제 사단이 난다. 환자가 진료받았다는 것을 의사가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증명하지 못하면 과징금이 5배다.


그리고 병원 업무정지는 덤이다. 내가 협회 활동을 하면서 만나본 회원들 중 상당수는 공단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밉보이면 평생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회원들이 제법 많았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것 같아서 이슈화하자고 해도 평생을 이 짓을 해야 하는데 밉보이기 싫다며 손사레를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제 공단에 특사경까지 만들려고 한다. 


한국의 건보 시스템이 의사들을 바라보는 태도는 '잠시라도 한눈 팔면 조금이라도 돈을 더 긁어가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돈벌레들'이라는 것이다. 시스템을 구성하면서 그 구성원들이 선량할 것이라는 가정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이건 마치 아이를 공부시키는데 잠시라도 한눈 팔면 공부하지 않고 헛짓을 하니까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회초리 들고 감시하며 공부시켜야 한다는 것과 비슷하다.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다가 아이가 한 문제 풀 때마다 채점하면서 틀렸다고 줄을 짝짝 그어대는 꼴이다. 더 웃기는 것은 옆에서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인데 방법이 어떻든 아이에게 공부시키는 것은 잘하는 짓이라며 회초리 든 사람을 연일 칭찬하고 아이에게는 꾀를 부리려고 징징댄다며 아이를 나무래는 꼴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 정신이 아니었다.


내 나이 50에 의사 그만 둔 사연


나는 이 무지막지한 폭압적 구조를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다. 만약 대학 때 이런 것들을 알았다면 나는 미련없이 의사의 길을 접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현실을 알았을 때는 당장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가장이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독립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시점에 나는 의사를 그만두었다.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리고 미련도 없다. 나이 50이 넘어서 수십년을 환자 진료만 했고 할 줄 아는 것이 환자 진료하는 것뿐이었지만 남은 삶이라도 말도 안되는 코미디 같은 현실 속에서 내가 아닌 남의 아바타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다. 


뒤늦게 의사가 아닌 새로운 생계수단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의사를 그만두지 않으면 그 굴레를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내가 좀 유별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내 스스로 용납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며 살 수는 없었다. 


지금 학생과 전공의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걸고 싸우고 있다. 정부에서 필수의료를 낙수효과로 살리겠다고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낙수, 즉 오갈 데 없게 만들고 할 수 있는 게 없게 만들면 어쩔 수 없이 필수의료를 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어떤 바보가 오갈 데 없어서 할 수 없이 하는 필수의료를 전공하겠는가? 후배들의 선택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이번에 정부가 어린 학생, 전공의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평소 하던 것처럼 아주 폭력적이었다.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사회 초년생과 학생들을 상대로 걸핏하면 명령과 지시에 겁박을 일삼는 정부를 보니 내가 다 부끄러울 지경이다. 


다만 아직 후배들은 대한민국 의료체계의 실상을 정확히 모른다. 건강보험을 하나의 직장이라고 가정하면 그 관리자인 정부, 공단, 심평원이 그 속에서 일하는 의사들을 대하는 태도는 이번 사태 때 보여준 것에서 한치도 벗어남이 없다. 의사는 생각 같은 것은 하지도 말고 평생을 정부가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하고 살아야 하는 존재다. 개인의 선택권과 전문가의 재량권, 그리고 의료사고 발생에 대비한 개인의 자기 방어권을 박탈해야만 공익이 실현된다는 믿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동안 필수의료는 정부가 망쳤고 이번에 그나마 근근이 이어가던 생명줄을 완전히 끊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정부에게 요구하는 필수의료를 살려달라는 외침은 너무 공허하게 들린다. 차라리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는 선택권을 돌려달라고, 전문가의 재량권을 돌려 달라고, 그리고 자기 방어권을 돌려 달라고 외쳐야 한다. 그게 더 명분이 있다.


출처: https://www.doctor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5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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